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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휴가, 어린왕자를 만나러 간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0/07/26
조회수
1934

 

책이라는 것은 과실주와 같다. 막 담갔을 때의 그것과 3년, 5년, 10년이 지나고 나서의 과실주가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것처럼, 책 또한 같은 책이라도 읽는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책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귀밑 3센티미터. 촌스럽기로 따지면 치명적이었던 길이의 단발머리 여중생이었던 내가 학교 벤치에 앉아 읽은 어린왕자, 정말 다 컸다고, 세상을 다 알았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어린왕자’, 그리고 갑자기 너무 많은 자유를 제공받은 대학교 시절 읽었던 ‘어린왕자’, 그리고 좀 살아봤다고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는 지금 30대에 읽는 ‘어린왕자’는 분명 같은 제목,같은 내용인데 모두 다른 책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지간히 재미없다며 이게 왜 필독서일까 하고 시작된 ‘어린왕자’라는 한 권의 동화가, 이제 인생의 맛을 조금은 알게 되고 세상을 좀 경험해 보니 이 ‘동화’라는 것이 이상하게 구절구절 마음에 와닿는다.
과장된 칭찬을 좀 하자면 최고의 연애 지침서요, 철학서요, 심리학 책이다.
그리고 카멜레온처럼 볼때마다 다른 색을 내는 매력적인 녀석이어서, 시간차를 두고 이따금 그리고 꾸준히 읽어봄직한 책이다.

문득, 작가의 말처럼 창문에는 제라늄 화분이 놓여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분홍빛 벽돌로 지은 예쁜집 이라는 아름다운 묘사보다 “2만달러 집이야”라는 말에 쉽게 동조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차례로 만났던 순수와 결별한 듯한, 답답한 숫자쟁이 어른들의 모습이 또 내안에 커지지는 않았는지는 두려움도 든다.

어린왕자가 말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오늘 또다시, 세상 속에서 흔히들 가치 있다고 평가되는 것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이 새삼 보인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며, 별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한송이 꽃 때문인 것처럼..

이번 휴가길. 비행기 안이든, 기차 안이든,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안에서든.. 어디든 좋겠다.
휴대폰.인터넷.TV.신문.. 아무것에도 구속 받지 않는 며칠 동안 눈감고 다시 한번 어린왕자를 만나볼 생각이다.
그럼 나도 다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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